서 론
췌장암은 5년 생존율이 5% 미만에 불과한 극히 불량한 악성 종양이다. 조직학적으로는 췌장 선암(pancreatic ductal adenocarcinoma)이 모든 췌장암의 90%를 차지하며, 통상 췌장암으로 통용되고 있다[1]. 췌장암의 예후가 불량한 이유는 1) 발생 초기의 진단을 위한 특이적 증상이나 징후가 없고, 또한 조기에 진단을 위한 효과적인 선별 검사법이 없다는 임상적 한계, 2) 상대적으로 췌장암 종양세포가 발병 초기부터 매우 악성의 경과를 보인다는 생물학적 특징 및 3) 해부학적으로 주변에 주요 혈관이 위치하여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종양도 근치적 절제를 하기 어렵다는 점들이다. 과거에는 이와 더불어 간암, 폐암, 대장암에서 널리 알려진 췌장암의 고위험군이 없다는 점도 예후가 불량한 이유로 거론되었으나, 지난 10여 년간의 연구들을 통해 췌장암의 경우도 고위험군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으며, 이들에 대한 선별적 추적 검사를 통해 조기에 췌장암을 진단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일반인뿐 아니라 소위 췌장암의 고위험군들에 대한 체계적인 감시 프로그램이 확립되지 않았으며, 이들에 대한 효과적인 선별 검사방법도 여전히 없는 상태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췌장암 발생의 감시와 조기 진단을 위한 최근까지의 연구들의 성과를 알아보고자 한다.
췌장암의 분자생물학적 발암 모델
췌장암의 조기 진단을 위해서는 결국 췌장암의 암화 과정과 전이 과정에 대한 분자생물학적 규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잘 알려진 췌장암의 암화 과정은 PanIN progression model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정상 췌관상피세포가 순차적인 유전자 손상 및 돌연변이의 축적에 따라 PanIN-1A (flat), PanIN-1B (papillary without dysplasia), PanIN-2 (papillary with dysplasia), PanIN-3 (carcinoma in situ)단계로 이행하여 결국 췌장선암으로 진행한다는 대장암의 adenoma-adenocarcinoma sequence와 유사한 모델이다[2-4]. PanIN의 초기에서부터 단계에 따라 특정한 oncogene 또는 tumor suppressor gene의 이상이 발생하여, 이러한 유전자의 이상이 축적됨에 따라 췌장 선암으로 진행된다. 특히 PanIN progression model은 pdx-Cre;LSL-kRasG12D 형질 전환 마우스 모델을 포함한 다양한 마우스 모델 연구에서 실험적 재현과 단계별 유전자의 유사한 변이현상이 관찰되었다[5]. 특히 췌장암의 암화 및 전이 단계에 따른 특정 유전자 이상 및 이와 관련된 세포신호는 췌장암의 조기 진단 및 치료제 개발의 유력한 표적이 되며, 현재까지 이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PanIN progression model이 모든 췌장암의 발생을 설명할 수는 없다. 즉, 현재까지 알려진 췌장암의 전구병변은 PanIN외에도 intraducatal papillary mucin neoplasm, mucinous cystic neoplasm 등이 있으며, 이들로부터 췌장암의 발생에 대한 분자 생물학적 규명은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태이다. 이와 더불어 지난 20여 년간 연구자들간의 논란이 해결되지 않는 대표적인 쟁점은 “과연 췌장암의 발생이 시작되는 세포의 기원이 어디인가?”이다. 이는 현재의 병리학적 관점에서는 대부분의 췌장암은 종양세포가 췌관 상피 세포의 형태학적 특징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췌장에서 췌관상피세포가 차지하는 비중이 10% 미만임을 감안하면 이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에 대하여 전술한 마우스 실험을 통해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을 기반으로 하여 췌장암의 기원세포는 췌관상피세포가 아니라 췌장 선방세포라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즉, 췌장내 선방세포가 소위 “acinar to ductal metaplasia (ADM)”를 거쳐 PanIN으로 진행하여 췌장암이 발생된다는 주장이다[6,7]. 그러나 실제 환자의 수술조직을 검토할 경우 다수의 인체 췌장암 조직에 서는 ADM이나 PanIN병변을 관찰하기 쉽지 않으며, 이러한 현미경적 조직 변화를 진단할 수 있는 영상학적 진단법도 없다.
췌장암의 고위험군과 이에 대한 선별 검사
췌장암의 고위험군은 1) 역학적 고위험군과 2) 유전적 고위험군으로 나눌 수 있으며, 전체 췌장암의 10-20%를 차지한다. 만성 췌장염과 당뇨는 대표적인 역학적 고위험군으로 현재까지의 어떠한 연구도 이들을 포함한 역학적 고위험군에 대한 췌장암의 감시 또는 선별검사가 조기 진단에 기여한다는 보고는 없다. 다만, 최근의 연구들에 따르면 최근 1년 내 새로 진단된 당뇨의 경우는 췌장암의 발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주의 깊게 관찰하여야 한다[8]. 이에 반하여 미국과 유럽에서는 췌장암의 유전적 고위험군에 대해 일찍부터 주목하여 나라별 또는 기관별로 췌장암 유전성 고위험군 등록사업을 통해 코호트 등록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9]. 특히, 췌장암 발생의 상대 위험도가 5-10배 이상인 유전적 고위험군에 대해서는 비교적 젋은 나이부터 췌장암에 대한 선별 검사를 시행하고 있으며, 이는 현재 진단의 감수성과 특이도가 가장 좋은 초음파내시경 검사를 근간으로 하여 연구기관에 따라 자기공명촬영을 병행하여 선별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2012년까지 발표된 유전적 고위험군 환자의 추적 관찰을 통한 효과는 총 988명의 고위험군에서 18명의 췌장암, 23명의 PanIN-3/carcinoma in situ를 조기에 진단하였다. 그러나 18예의 췌장암 중 2예만이 소위 조기 췌장암에 해당되는 T1N0M0의 병기였으며, 나머지 16예는 진행성 췌장암으로 현재의 고위험군에 대한 조기 진단 프로그램은 대상군의 2.5%에서 조기진단의 효과를 보여 예상보다 그 효과가 미미하였다[9]. 그러나 유전성 췌장암 고위험군 코호트 등록 및 선별 검사의 임상적 유용성에 대한 검증은 보다 장기간, 많은 수의 대상군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췌장암 조기진단 바이오마커 개발 현황과 문제점
1. Serologic biomarkers
췌장암을 포함한 모든 암종의 조기 진단은 검사 자체의 예민도와 특이도가 높아야 한다는 기본적 요구사항 외에도 검사의 간편성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 보면 혈액을 통한 췌장암의 조기 진단법 개발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가장 매력적이다.
전통적으로 임상에서 널리 사용되는 췌장암의 혈액 biomarker는 CA19-9이다. 그러나 CA19-9는 췌장암의 진단에 있어 70%가량의 예민도와 80%가량의 특이도를 보여 선별검사로는 권고되고 있지 않다. 지난 20년간 무수히 많은 serologic biomarker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현재까지 CA19-9를 능가하는 serologic biomarker는 없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최근 의미있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는데, 이 중 Faca 등은 ALCAM, ICAM1, LCN2, TIMP-1, REG1A, REG3, IGFBP-4의 총 7개의 serologic biomarker panel을 통해 췌장암의 선별이 효과적으로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으며, 현재 대규모 집단을 통해 그 효과가 검증 중이다[10]. 이외에도 nab-paclitaxel의 실험적 표적인 osteoponotin, macrophage inhibitory cytokine-1은 CA19-9에 비해 높은 정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11,12]. 그러나 이러한 serologic biomarker의 중요한 한계는 건강한 일반인으로부터 췌장암 환자 선별의 정확도는 높지만, 췌장염 환자군과의 감별에는 CA19-9에 비해 탁월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2. Biomarker in tissue
췌장암의 조직진단은 초음파내시경을 통한 세침흡인 생검이 널리 보급됨에 따라 보다 더 용이해졌다. 이는 췌장 내 1 cm 미만의 종괴로부터도 조직 채취가 가능하여, 획득한 췌장 조직을 이용하여 췌장암의 분자 생물학적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즉, 췌장암과 췌장암의 전암 병변으로부터 조직을 채취함으로써 PanIN progression model을 통해 밝혀진 췌장암 발생과 관련된 유전자의 이상유무를 확인함으로써 조기에 췌장암을 진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KRAS 유전자 돌연변이는 PanIN의 초기부터 발생하여 췌장암으로 진행된 경우 약 90%에서 동반되는 췌장암발생의 “key driver mutation”이다[13-16]. 따라서 많은 연구들이 췌장 조직으로부터 KRAS 돌연변이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췌장암의 조기진단을 시도하였으나, 대부분의 만성 췌장염에서도 KRAS의 동일한 돌연변이가 관찰되어 임상에서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13]. 이외에도 초음파내시경 세침흡인을 통해 획득한 세포들을 이용하여 췌장암의 발생과정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p16INK4A와 SMAD4 유전자의 결손을 KRAS 돌연변이와 함께 panel로 분석하여 만성 췌장염과 췌장암의 감별이 가능하다는 연구도 있다[17]. 그러나 현재까지 널리 알려진 췌장암 관련 유전자의 손상유무를 이용한 임상 검사는 그 유용성이 입증되지 않고 있다.
3. 췌장암의 조기진단을 위한 biomarker 개발의 문제점
췌장암의 진단과 치료를 위한 biomarker 개발을 위해서는 실제 환자 유래 종양세포 및 조직을 이용한 실험적 연구와 이행 연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췌장암 환자로부터 연구를 위한 종양세포 또는 조직의 획득이 상당히 어려워 최근 미국 국립 암 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에서는 췌장암 연구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바로 임상 샘플의 획득이라고 정의하기도 하였다[22]. 따라서 연구를 위한 췌장암 임상 조직 및 세포의 banking 시스템 구축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