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담낭의 급성 염증은 대부분 담석에 의한 담낭관의 폐쇄와 관련이 있고 이런 경우를 담석성 담낭염이라 한다. 그러나 급성 담낭염의 5-10%에서는 담석이 동반되지 않는데 이 경우 유발 요인으로는 흔히 중증 외상이나 화상, 출산, 대수술 및 장기간의 금식 등이 있고, 그 외에도 드물게 엡스테인-바바이러스 감염[1], 살모넬라증[2] 등의 감염증이나 전신홍반루푸스[3] 등의 전신질환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이 담석과 무관하게 담낭에 염증이 생긴 것을 통상적으로 무담석성 담낭염이라고 정의하고 병리학적으로 담석성 담낭염과 다르게 담낭염의 유발기전이 담낭의 허혈을 비롯한 여러가지 복합적 원인에 의해 발생하며 상대적으로 심한 괴사성 병변이 관찰된다는 점이 특징이다[4].
과거 학질(瘧疾)로 불렸던 말라리아는 오래 전부터 한반도에서 흔히 관찰되는 질병이었다. 1960년대부터 시행된 말라리아 보건사업의 성과로 1984년 이후에는 토착 말라리아의 발생 보고가 없었으나 1993년 휴전선에서 근무하던 병사가 삼일열 말라리아(Plasmodium vivax)에 이환 된 이후 해마다 발병자 수가 늘어 2000년에 4,142명을 정점으로 현재는 그 수가 많이 줄어 들었다[5]. 삼일열 말라리아의 합병증으로 황달, 빈혈, 혈소판 감소, 중추 신경 감염, 저혈당, 비장경색[6], 망막출혈[7], 급성 호흡부전 증후군(ARDS), 간부전 및 신부전[8] 등이 있으나, 드물게 급성 담낭염을 발병시키기도 한다[9-11]. 이 경우 합병증의 치료에만 집중할 경우 말라리아에 대한 진단과 치료가 늦어질 수 있어 주의하여야 한다.
저자 등은 초기에 단순 담석성 급성 담낭염으로 오인되었으나 비장경색까지 합병한 삼일열 말라리아 관련 급성 담낭염으로 진단된 환자를 경험하였다. 본 증례와 같이 삼일열 말라리아와 관련된 급성 담낭염은 국내에서 아직 알려진 바가 없어 문헌 고찰과 함께 보고하는 바이다.
증 례
62세 여자가 내원 10일 전부터 발생한 발열과 오한 그리고 7일 전부터 식후에 발생하는 심와부 통증을 주소로 응급실로 내원하였다. 환자는 10년 전부터 고혈압과 당뇨병이 있어 약물로 조절을 해 왔으며, 흡연력과 음주력은 없었다. 그 외 과거력과 가족력에서 특이 소견은 없었다. 환자는 서울시 송파구에 거주하는 가정주부로 최근 6개월간 해외 여행 및 서울 근교를 포함한 지방 여행을 한 적이 없었으나 집 근처 공원에 나들이는 하였다고 한다. 내원 당시 문진 소견상 피로와 전신 쇠약감, 그리고 열감과 오한 및 심와부 통증을 호소하였다. 내원 시 신체 활력 징후는 혈압 140/90 mmHg, 맥박 108회/분, 호흡수 20회/분, 체온 40.3℃였다. 이학적 검사에서 환자의 의식은 기면 상태였고 공막의 황달은 관찰되지 않았다. 환자는 우상복부와 심와부에 명확한 압통이 있었고 반발 압통은 없었으며 Murphy’s sign 양성이었다. 내원 당시 시행한 말초 혈액 검사 결과 백혈구 4,500/µL (호중구 87%), 혈색소 11.7 g/dL, 혈소판 66,000/µL이었고 혈액 응고 검사는 PT 14.5 sec (9.2-13.3 sec)이었다. 혈청 화학 검사상 혈당 188 mg/dL (70-110 mg/dL), AST 41 IU/L (8-38 IU/L), ALT 57 IU/L (4-43 IU/L), 총 빌리루빈 2.6 mg/dL (0.2-1.2 mg/dL), 직접 빌리루빈 0.7 mg/dL (0.0-0.5 mg/dL), 알부민 3.1 g/dL (3.8-5.3 g/dL), alkaline phosphatase (ALP) 44 IU/L (35-104 IU/L), γ-glutamic transpeptidase (GTP) 22 IU/L (8-35 IU/L), 혈중 요소 질소 30.3 mg/dL (10-26 mg/dL), 크레아티닌 0.8 mg/dL (0.6-1.2 mg/dL), 젖산탈수소효소 339 IU/L (101-260 IU/L), 칼슘 7.2 mg/dL (8.4-10.2 mg/dL) 및 인 1.6 mg/dL (2.5-4.6 mg/dL)이었다. 그 외 혈청 C-반응단백질 59.6 mg/L (0-5 mg/L), 프로칼시토닌 25.91 ng/mL (0-0.05 ng/mL), 아밀라아제 40 IU/L (28-100 IU/L), 리파아제 44 IU/L (13-60 IU/L)이었다. 내원 시 시행한 복부 및 흉부 단순촬영 결과 이상 소견은 없었다. 입원 당일 시행한 복부 초음파 검사와 computed tomography (CT) 촬영에서 비후된 담낭벽과 담석이 관찰되었으나, 담낭 확장 소견은 명확하지 않았다(Fig. 1). 환자의 의식상태가 명확하지 않고 전신 무기력증이 심해져 급성 담석성 담낭염에 의한 패혈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내원 당일 경피 경간 담낭 배액술(percutaneous transhepatic gallbladder drainage, PTGBD)을 시행하였으며 동시에 수액 치료 및 메로페넴(meropenem)과 반코마이신(vancomycin)을 경험적 항생제로 투여하였다. 배액관을 통해 나오는 담즙은 검은 색깔에 끈적이는 양상이었다. 내원 12시간 경과 후 담낭 배액 및 항생제 치료가 들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축기 혈압이 70 mmHg까지 떨어져 승압제를 투여하면서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지속하였다.
입원 이틀째 환자는 열이 떨어지는 추세였고 복부 증상이 남아있기는 하였으나 통증은 일부 호전된 상태였으며 말초 혈액 검사에서 백혈구 4,910/mm3 (호중구 67%)으로 호중구 감소 역시 관찰되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배액관을 삽입한 급성 담석성 담낭염 환자의 임상경과와는 달리 입원 3일째 다시 우상복부의 통증을 심하게 호소하였고, 압통이 있었으며 체온이 40.1℃로 증가하는 경과를 보였다. 당시 경피경간 담낭 배액관으로 나오는 배액량은 하루 100-150 mL로 이전과 변화가 없었으며, 배액관 세척에서도 특이 소견은 없었다. 내원 4일째 환자의 발열은 약간 호전되었으나, 복통의 호전이 없었고 통증 부위의 위치가 상복부 전반으로 퍼지는 양상으로 변하여 다시 복부 전신 단층 촬영을 하였다. 추적한 검사에서는 담낭벽 비후가 일부 호전되기는 하였으나 새롭게 비장경색이 발생하였다(Fig. 2). 2일마다 고열이 반복되어 감염내과 협진 하에 말초 혈액 도말 검사 및 말라리아 항원 혈청검사(ELISA)를 시행하였다. 내원 5일째 환자의 체온은 다시 40.5℃까지 올랐고 전신무력감이 심하였으나, 당일 확인된 말초 혈액 도말 검사에서 적혈구 내 말라리아 원충(Plasmodium spp.)이 관찰되어 말라리아를 진단 할 수 있었다(Fig. 3). 아울러 동시에 보고된 삼일열 원충에 대한 항원 혈청 검사 역시 양성으로 확인되었다. 삼일열 말라리아 진단 직후 클로로퀸(hydroxychloroquine)과 프리마퀸(primaquine phosphate)을 투여하기 시작하였다. 상기 약을 투여한 다음날부터 40℃ 이상의 고열은 없었고 열 곡선은 감소 추세를 보이다가 정상화가 되었고 상복부 통증도 호전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혈소판 감소증 및 혈청 간기능 관련 수치 이상 등이 빠르게 호전되었다. 입원 8일째 일반병실로 이실 하였고 2주간의 말라리아 표준 경구투여 치료가 끝나는 내원 19일째 외과로 전과되어 담낭절제술을 시행 받았다. 당시 절제된 담낭의 병리 소견에서 담낭 내압이 올라가는 담석성 담낭염에서 흔히 관찰되는 점막의 미세담석 오니(cholelithiasis sludge)의 흔적이 전혀 없었고, 혈관염의 양상이 관찰되었다. 또한 점막의 허혈성 조직손상 소견과 미세 혈관 내 적혈구 응집현상이 다수 관찰되었다(Fig. 4A-D). 환자는 별다른 합병증 없이 내원 24일째 퇴원하였다.
고 찰
말라리아는 전 세계적으로 매년 3-5억 명의 환자가 발생하며 연간 200만 명 이상이 말라리아로 인해 사망한다[8]. 말라리아는 학질 모기(Anopheles spp.) 암컷이 흡혈하면서 인체에 감염되며, 인체에 질병을 일으키는 종류로는 열대열 원충(P. falciparum), 삼일열 원충(P. vivax), 난원형 원충(P. ovale), 사일열 원충(P. malariae) 등이 있다. 말라리아 감염자의 대부분은 열대열 혹은 삼일열 원충에 의하며, 사망자의 대부분은 열대열 말라리아에 의한 감염이나 최근에는 삼일열 말라리아에 의한 유아 사망률이 높고 성인에서 중증 말라리아의 발병 보고가 증가하면서 삼일열 말라리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1984년 이후 사라졌던 삼일열 말라리아가 1993년 다시 발생한 이후 급속히 확산되어 1998-2000년에는 연간 4천 명의 환자가 발생하였고, 그 이후에는 다소 감소하여 최근까지 연간 약 800여 명에서 2,0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하였다[3].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급성 담낭염은 대부분 담낭의 담석과 동반되어 발병하는데, 특히 기름진 음식 섭취 후 담낭의 급격한 수축이 담석의 담낭관 감돈을 유발하여 담낭의 내압이 올라가 발생하며, 영상의학 검사상 담낭벽의 부종과 담낭의 확장을 특징으로 한다. 치료로는 수술적 절제가 원칙이나, 수술을 하지 못하는 전신상태의 경우 PTGBD를 주로 임상적으로 시행하며 이에 대한 치료 효과는 매우 좋다[12,13]. 그러나 본 증례에서 환자는 Murphy’s sign 양성이었으나, 응급실에서 시행한 복부 초음파 검사와 CT 촬영에서 복통에 비해 상대적으로 담낭의 확장의 심하지 않았었다. 또한 환자는 내원 당일 응급 배액술과 항생제 및 수액 치료에도 불구하고, 통상적인 담낭염과는 달리 호전되지 않고 쇼크 상태로 악화되었다. 이후 배액관의 기능이 정상임에도 환자는 체온이 40℃ 내외로 측정되었고 심와부 및 우상복부 통증이 완연히 호전되지 않아 단순 담낭 담석에 의한 담낭염의 임상경과와 상이한 양상을 보여 추가로 시행한 복부 CT 검사에서 말라리아의 또 다른 합병증인 비장경색이 발견되어 말라리아를 의심하였고 결국 삼일열 말라리아를 확진 할 수 있었다.
말라리아 질환에서 담낭염이 유발되는 기전은 아직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현재까지 제안된 기전의 하나로 감염된 적혈구가 미세 혈관에 침착되어 담낭 등의 장기에 허혈을 유발할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열대열 원충은 감염된 적혈구에 “knob”이라는 막단백을 형성시켜 적혈구 간의 응집 및 혈관 침착을 유발하는 반면 삼일열 원충은 막단백을 형성하지는 못 하지만 감염된 적혈구가 미세 혈관을 막는 세포응집현상을 보인다[9]. 말라리아 감염으로 인해 발열과 탈수, cholecystokinin 분비 감소가 생기면 담즙의 점성이 높아지고 이런 상태의 담낭에 감염된 적혈구에 의한 미세 혈관 허혈, 저혈압까지 동반되면 담낭염이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10].
또 다른 기전으로는 증가된 산소 요구량과 관련된 허혈 및 재관류 장애이다. 쇼크와 함께 이차적으로 생긴 담낭염은 담석에 의해 유발된 담낭염과는 다르게 미세 혈관의 순환 부족에 의한 혈관병증의 모습을 보이고 보다 심각한 임상경과를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병리학적 특징들은 임상적으로 담낭염의 발생 원인이 말라리아 때문이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4]. 본 증례 환자에서도 복통을 비롯한 임상양상이 통상적인 담낭염 치료에 별 반응이 없었으나, 말라리아 치료제 투여 후 급격히 호전되기 시작하였고, 이후 절제된 담낭의 점막에, 담석성 담낭염에서 흔히 관찰되는 미세담석 오니가 전혀 없었고, 비담석성 담낭염의 특징인 혈관염과 허혈성 점막 손상 소견이 다수 관찰되었다. 또한 전반적으로 모세혈관 내 적혈구 응집현상이 관찰되어 말라리아에 의한 담낭염 특징이 관찰되었다.
그 외 세번째 기전으로 설명되는 것이 말라리아 감염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이토카인의 불균형이다. 말라리아 감염시 IL-6, IL-10, IL-12, TNF-a 등의 사이토카인이 분비가 되는데 이것이 전신 염증을 유발하고 담낭의 손상까지도 유발 혹은 악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14]. 그러나 본 증례에서는 이러한 사이토카인 검사가 시행되지 않아 확인할 수는 없었다.
통상적으로 발열과 우상복부 및 심와부 동통 그리고 영상의학 검사상 담낭의 비후와 특히 담낭 내 담석이 관찰되면 단순한 급성 담석성 담낭염으로 진단하고 더 이상의 추가 검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본 증례에서와 같이 환자가 특별히 말라리아 위험지역에 방문한 과거력이 없는 경우 그 이상의 검사를 시행하기는 더욱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발열과 복통의 기간이 각각 10일과 7일로 통상적인 급성 담석성 담낭염에 비해 길고, 설명하기 어려운 기면 상태가 지속되었고, 복통의 강도에 비해 체온이 40-41℃로 고열이 동반되어 흔히 보는 단순 급성 담석성 담낭염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따라서 급성 담석성 담낭염 진단이 되었으나 임상경과가 적절한 치료에도 악화되는 경우 적극적으로 다른 원인도 함께 찾아봐야 하며, 본 증례와 같이 삼일열 말라리아와 관련된 급성 담낭염은 국내에서 아직 알려진 바가 없어 문헌 고찰과 함께 보고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