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학회로부터 학회 역사에 대한 강의 요청을 받고 개인적으로는 영광이라고 생각을 하였으나, 아직 학회의 산증인이신 여러 은사님과 선배 교수님들이 계시는데, 과연 내가 강의 적임자인가를 고민하다가 강의를 하기로 하고 이에 대한 투고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필자는 내시경역행담췌관조영술(endoscopic retrograde cholangiopancreatography, ERCP) 연구회가 시작하는 해에 신촌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전임의를 마치고 연세대학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서 췌담도 분야의 진료를 시작하게 되어 그 당시의 기억과 대한췌장담도학회 20년사 책자를 토대로 이 글을 작성함을 밝혀둔다[1].
한국 ERCP의 시작과 ERCP 연구회의 태동
국내에서 첫 ERCP는 1973년 7월 16일 연세대학교 최흥재 교수님이 췌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하였고, 1976년에 220예의 ERCP 증례를 내과학회에 ‘숙제보고’로 발표하였다. 1978년 12월에 연세대학교 강진경 교수님이 총담관 결석 환자에서 유두괄약근절개술로 담관 담석을 치료한 것이 한국 치료 내시경의 시작이었다. 소화기학의 새로운 분야인 췌담도 내시경 시술을 1992년 책자(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 조영술, 고려의학)로 발간하였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이 분야의 발전은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지금의 대한췌장담도학회의 뿌리인 ERCP 연구회는 1990년도에 ERCP 보급과 교육을 위하여 국내에서 췌담도 분야를 개척하셨던 교수님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아직 국내에 ERCP의 저변이 넓지 않아 시술 기관의 수도 많지 않았다. 원로 교수님들의 회고에 의하면 1980년대 ERCP를 하시던 몇몇 교수님들께서 우리나라에 ERCP 연구회 모임을 제안하셨다. 그러나 준비 과정에서 아직 당시 한국의 소화기 내시경학회의 규모가 크지 않은데 췌담도가 분리되는 것에 대한 우려 등으로 연구회 결성에 어려움이 있었다. 1990년 가을 일본 동경에서 있었던 제1회 일본 췌담도 질환 치료내시경 워크숍에 참석한 교수님들이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모임이 필요함을 공감하고 ‘ERCP 연구회 준비위원 모임’에 대하여 의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에 같은 해 연세대(정재복), 순천향대(심찬섭)와 고려대(김창덕)의 교수님들이 ERCP 집담회 준비위원으로 활동하시어 연구회가 집담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새로운 시술에 대한 열정과 자발적 참여로 진행되던 연구회를 토대로, 드디어 제1차 ‘ERCP 집담회’가 1991년 1월, 서울 순천향대학교병원 강당에서 6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집담회는 매월 주기적으로 ERCP 시술을 시행한 환자의 증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ERCP를 시행하거나 배우고자 하는 젊은 의사들의 적극적인 참여 열기는 대단하였다. 필자는 그 당시의 ERCP 시술과 췌장-담도 질환에 대한 젊은 의사들의 열정을 “ERCP fever”로 부르고 싶다. 당시만 해도 고된 일과 중에 집담회 참석을 위하여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교통 환경에서 지방과 서울을 오고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원도에 근무하는 필자뿐 아니라 더 먼 곳에서도 많은 선생님이 집담회 참석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니 집담회 발표 준비가 즐거웠고 오히려 집담회 날이 기다려지기까지 하였다. 한 번은 집담회를 마치고 귀가하는 기차 편에서 졸다가 하차 역을 놓쳐 다음 역에서 택시로 귀가한 추억도 있다. 이 시기에는 지금과 같이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icture archiving and communication system, PACS)이 없어 일일이 X-선 사진 한 장 한 장을 직접 슬라이드 사진으로 찍어서 만들어야 했고, 발표도 컴퓨터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빔프로젝터에 슬라이드가 들어간 원통을 돌려가며 하였다. 당시를 돌이켜 보면, 모든 참석자가 ERCP라는 매력적인 비수술적 술기로 난치의 질환을 극복하는 과정과 그 과정의 시행착오를 공유하면서 전문가가 지녀야 할 긍지와 동지애를 나누던 시절이었다.
ERCP 연구회에서 대한췌담도연구회로 발전
매달 전국의 여러 병원을 순회한 ERCP 집담회는 나날이 그 세를 더했고, 1993년 5월에는 ‘췌장의 낭성종양’이라는 주제로 당시 서울중앙병원(현 서울아산병원) 강당에서 제1회 담도계 및 췌장질환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ERCP 시술 증례뿐 아니라 다양한 췌장과 담도 질환에 대하여 논의의 장을 넓혀나갔다. 1995년 2월까지 연 10회의 모임으로 총 38회의 ERCP 집담회가 진행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단순한 집담회 개최를 넘어서 췌담도 질환을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논의할 학술의 장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1995년 1월 부산해운대에서, 강진경, 양웅석, 민영일, 윤용범, 심찬섭 교수가 집담회를 연구회로 발전 승격시키기 위하여 ‘대한췌담도 연구회’ 창립을 위한 준비 모임을 하고 회칙 임시안을 만들었다. 이어서 그해 2월 제38차 ERCP 집담회에서 연구회 창립을 발의하고, 일사천리로 다음 달인 3월 25일 고려대학교 인촌 기념관 대강당에서 창립총회를 열어 대한췌담도연구회를 창립하였다. 제1차 ERCP 집담회를 시작하고 연구회 창립의 기초가 된 38차 집담회까지 4년 동안 해마다 10회의 집담회, 그 전에 3, 4년 동안의 창립 의논 과정을 합하여 7, 8년의 산고 끝에 ERCP 연구회 창립총회를 열게 된 것이다.
ERCP 연구회 제1대 회장은 연세대학교 최흥재 교수가 추대되었다. 연구회에서는 창립총회와 담도암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진행하였다. 연구회 창립 후 정기적인 집담회와 함께 매년 췌담도 분야의 여러 질환을 주제로 춘계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창립 준비위원회에서는 소화기내과 의사를 포함하여 췌담도 분야의 기초연구자, 해부병리과, 영상의학과 그리고 외과를 아우르는 연구회를 구성하기 위하여 췌담도 관련 다양한 분야의 사람 참석을 도모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연구회에서 다루는 내용이 ERCP 시술 관련 내용이 많아 타과의 참여는 점차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연구회는 매년 발전을 거듭하였다. ‘ERCP Atlas’ 편집위원회를 구성하여 위원장 심찬섭 교수를 위시하여 7인의 교수님들의 수고로 1993년 3월 ‘ERCP Atlas’ (고려의학)가 출간되었다. 2005년 10월에는 순천향대학교병원에서 첫 대한췌담도연구회 주최로 한국과 일본이 참가한 Single topic Symposium이 ‘Progress in diagnosis and treatment of bile duct cancer’ 주제로 개최되었다. 당시 간문부암의 수술적 치료개념을 새롭게 정립한 나고야 암센터의 Yuji Nimura 교수도 참석하여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러한 학회의 시도가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학문적으로 국제적 네트워크 형성을 발전시키는 시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또한, 2001년 9월 대한췌담도연구회 연수강좌의 하나로 서울중앙병원에서 ERCP live demonstration을 시작하였다. 이는 ERCP를 이미 하는 사람이나 배우고자 하는 이 모두에게 획기적인 변곡점으로 ERCP 보급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러한 시도가 가능하게 된 것은 국내에 비디오 내시경(video endoscopy) 의 도입과 원격 방송 시스템의 발전 덕분이었다. 필자가 ERCP를 시작하던 때에는 모든 내시경이 광섬유시스템(fiber optic system)이라 카테터 삽관이나 시술 내용을 직접 보고 배우기가 어려웠다. 물론 당시에도 교육용 내시경기기가 있었지만, 이것을 ERCP 내시경에 부착하면 내시경이 무거워지고 시야도 나빠져서 시술 교수님도 매우 불편하셨다. 그 당시 ERCP를 배우는 수련의로서는 어두운 방에서 교수님이 왜 저렇게 힘들어하시고 가끔 화를 내시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비디오 내시경의 등장은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축복의 신기술이었다. 라이브 시연을 통하여, 기존 술기에 대한 강의 위주 대신, 직접 증례를 시연해 고난도의 기술을 알리고 토의함으로써 젊은 의사들이 쉽게 시술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라이브 시연은 회를 거듭할수록 참석 인원이 증가하였고, 당시 새로이 등장한 내시경초음파 시술도 포함하였다. 라이브 시연 초창기에는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오히려 이러한 것도 청중에게는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한 예로, 당시 수면 내시경이 국내에서는 초창기였는데, 시술 도중 환자의 산소 포화도가 낮아져서 시술을 중단하고 소생술을 시행한 너무 오래되어 아련하면서도 쓰디쓴 기억도 있다.
2006년 2월 순천향대학병원에서 개최된 ‘Diagnostic and Therapeutic ERCP/EUS’ 제목 하의 라이브 시연은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췌담도 내시경 교수들이 대거 참석하여 ERCP를 전공하는 국내의 젊은 의사들에게 췌담도 치료 내시경 분야의 시야를 넓히는 큰 자극이 되었다. 2009년 2월 한양대학교 국제회의실에서 개최된 라이브 시연에서는 차세대 네트워크 선도 연구 시험망(Korean advanced research network, KOREN)을 이용한 시술 중계가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소화기 영역에서는 최초로 KOREN을 이용한 원격 영상 전송 방식을 도입하여 라이브 시연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계기가 되었다. 이전에는 라이브 시연 시술 병원에 시술자가 직접 자신의 시술 대상 환자를 모시고 와서 시술하던 방식이 내시경 환경이 익숙한 각자 병원 시술실에서 시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시스템 도입으로 국내 병원 참여를 넘어 외국 병원의 시술도 실시간 참여가 가능하게 됨으로써 췌담도 시술 분야의 국제화도 가능해졌다.
대한췌담도연구회에서 대한췌담도학회의 탄생
대한췌담도연구회의 활동은 당시 국내 소화기학 분야의 그 어떤 분야보다도 활발하였다. 연구회는 지속적 역량 강화를 토대로 2007년 4월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연차 총회에서 ‘대한췌담도학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조직을 확대 개편하였다. 이로써 시술 이름으로 시작한 학술 모임이 소화기학 분야의 명실상부한 한 학회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학회는 2007년 한국췌장외과연구회와 자가면역췌장염과 췌장 낭성종양을 주제로 내-외과 공동 관심사에 대한 심포지움을 개최하였다. 이듬해인 2008년부터는 기존의 춘계학술대회에 더하여 매년 추계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참가자들에게 연구 결과를 발표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더하여 기존의 임상의학 중심의 학술대회에서 기초의학 분야의 접목이나 가이드라인 작성 등 다양한 학술 발전을 도모하였다. 또한, 대한췌담도학회는 자연스럽게 국제학회와의 공조를 확대하여 2011년에는 제4차 아시아 태평양 췌장학회(Asia-Oceanic Pancreatic Association, AOPA), 2013년 세계췌장학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Pancreatology, IAP)를 유치하였고 2015년에는 창립 2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여 한국의 췌장 담도 분야의 역량을 세계에 알리고 해외 학회와의 활발한 협력을 도모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11년 4월 대한췌담도학회는 대한의학회 정식 학회로 인준받아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소화기학 분야의 중요한 한 학회가 되었다. 2014년에는 기존의 회장제도에서 이사장제도로 개편하였고 2019년 대한의학회의 인준을 거쳐 현재의 명칭인 대한췌장담도학회로 변경되었다. 이후 학회의 국제화를 비롯한 많은 활약과 발전상은 모두가 알고 있는 바이며 이 글의 기술 범위를 넘어 더 이상의 기술은 하지 않는다.
맺음말
30여 년 전 시술 이름에서 시작한 학술 모임이 지금은 세계적으로 학문적 경쟁력을 갖춘 학회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수많은 선배 교수님들과 회원들의 노고와 헌신 덕분으로 생각한다. 학회 발전은 젊은 회원들의 열정과 참여로 지속 심화하여야 한다. 특히 췌장 담도 분야의 치료 내시경은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췌장암을 비롯한 임상 분야는 어떤 소화기 분야보다도 해결해야 할 많은 숙제가 남아 있다. 오래전 외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받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지금의 우리 학회의 수준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임상과 기초 분야의 학문적 경쟁력과 우월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모든 회원과 학회가 열린 마음과 전략을 갖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학회가 이러한 노력으로 췌장 담도 분야의 여러 난치 질환을 해결하면서 인류에 공헌하고 국제적으로 췌담도 분야를 선도하는 학회로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