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성차의학(sex- and gender-specific medicine)은 남성과 여성의 생물적⋅사회적 역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남녀 간 차이를 질병의 예방, 검사, 진단 및 치료를 할 때 적용하자는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이다[1]. 성(sex)은 남녀를 정의하는 생물적⋅생리적 특성을 의미하고, 젠더(gender)는 사회적으로 부여한 남녀에 적합한 역할, 행동, 활동 및 태도로 정의하고 있다[2]. 성 차이는 성호르몬, X- 혹은 Y-염색체에 발현되는 유전자, 체지방 분포 등의 차이에 의하여 발생한다. 사회문화적인 특성에 영향을 받는 젠더 차이는 질병과 관련된 스트레스에 대한 행동이나 생활 방식, 건강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 의료 시스템의 사용 방식 등에 영향을 미친다.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정밀의료는 꾸준히 발전하여 왔으나 남녀 간의 차이를 의료에 반영하는 성차의학은 심혈관 질환이나 당뇨 등의 대사이상 등 일부 질환에 국한되어 왔다[1]. 소화기 질환, 특히 췌장·담도 질환에 대한 성차의학은 아직까지 연구 성과가 부족하며 향후 많은 연구들이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췌장·담도 질환에 대한 성차의학을 살펴보고 성차의학의 연구 동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본 론
1. 췌장·담도 질환에서 성차의학
2) 담석증
담석은 남성보다 사춘기와 폐경기 사이의 여성에서 2-3배 정도 빈발하는데[5], 남녀 간 발생률의 차이는 30대에서 가장 크고 갱년기 이후에는 유사하다. 여성호르몬은 전체 담즙산 양의 감소 및 담즙내 콜레스테롤 양의 증가를 통하여 담즙내 콜레스테롤의 과포화를 유발하여 담석 생성을 촉진한다. 담석의 발생률은 에스트로겐에 용량-의존적으로 증가하여[6], 임신 회수에 비례하여 담석의 발생률이 증가하고 경구피임제나 호르몬 보충 치료를 받는 경우 담석의 상대위험도가 38% 증가하였다[7]. 최근에 19개 연구의 556,620명을 포함한 메타분석에서도 외부에서 투여한 에스트로겐은 담석의 위험인자로 상대위험도는 1.59 (95% confidence interval [CI]: 1.44-1.75)였다. 그러나 호르몬 보충 치료는 상대위험도가 1.79 (95% CI: 1.61-2.00)로 담석의 위험인자이지만, 경구피임제는 상대위험도가 1.19 (95% CI: 0.97-1.45)로 담석의 발생을 증가시키지 않았다[8].
한편, 커피 섭취가 담석의 발생을 감소시킨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는데, 이는 커피가 콜레시스토키닌의 분비를 촉진시켜 담낭의 수축력을 증가시키고, 담즙내 콜레스테롤 결정을 방해하여 담석 형성을 억제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9]. 그러나 최근의 메타분석에 의하면 남성에서는 커피와 담석의 발병률과는 연관성이 없었고 여성에서만 유의한 연관성이 있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10].
담석증으로 담낭절제술을 시행하는 시기나 적응증도 남녀 간 차이를 보였다[11].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한 스웨덴의 연구에 의하면, 여성은 평균 나이가 46.63세로 남성의 51.14세에 비하여 젊은 나이에 담낭절제술을 시행하였다. 또한, 여성은 담석성 복통으로 담낭절제술을 시행하는 경우가 많았고, 남성은 황달, 담낭염, 담관석 혹은 췌장염 등의 담석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담낭절제술을 시행한 경우가 많았다. 가능한 원인으로 여성에서 빈번한 기능성 위장장애를 담석성 복통으로 진단하고 수술을 시행하였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11].
4) 오디괄약근 기능이상
오디괄약근 기능이상은 중년 여성에서 빈발하는데 여성에서 콜레시스토키닌이 오디 괄약근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13]. 실험동물에 콜레시스토키닌을 투여하면 수컷에 비하여 암컷에서 위상파 진폭이 증가하였다[14]. 내시경 역행담췌관조영술(endoscopic retrograde cholangiopancreatography, ERCP) 후 발생하는 췌장염이 남성에 비하여 여성에서 높은 이유도 오디괄약근 기능이상이 원인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13]. 또한, 담낭암의 위험요소로 알려진 췌담관합류이상은 여성에서 빈발하며, 췌담관합류이상 환자 중에서 담낭암이 발생하는 빈도도 여성에서 높았다(남성 44% 대 여성 83%) [15].
5) 췌장 낭종성 질환
췌장 낭종성 질환의 빈도는 남녀 간의 차이를 보이는데 장액성낭종(serous cystic neoplasm), 점액성낭종(mucinous cystic neoplasm) 및 고형가유두상종양(solid pseudopapillary neoplasm, SPN)은 여성에서 빈발하고[16], 췌관내유두상점액낭종(intraductal papillary mucinous neoplasm) [17]은 남성에서 빈번히 발생한다. 한편, SPN의 평균 크기가 50세 이하에서 7.6 cm이나 50세 이상에서 5.3 cm로 감소한 결과를 보여서 여성호르몬이 SPN의 성장을 촉진시킬 것으로 추측된다[18]. 남성은 여성에 비하여, 진단 당시 환자들의 연령이 높고 종양의 크기가 작으며 고형성분의 비율이 높은 특성을 보였다[19]. 그러나 다른 연구에서는 젊은 여성에서 진단된 SPN이 섬유성 피막과 콜레스테롤 갈라진 틈이 빈번히 발견되는 점 외에 종양의 크기나 고형성분의 비율 등은 남녀 간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며[20], 예후도 남녀 간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21].
6) 급성 췌장염
췌장염의 원인으로 음주와 담석이 차지하는 비율이 남성은 48%와 22%인데 비하여 여성은 9%와 66%로 여성에서 담석성 췌장염의 빈도가 높았다[22]. 한편, 담석성 췌장염의 빈도는 여성에서 높지만 담석증 환자 중에서 췌장염이 발생하는 비율은 남성이 높았다. 그 이유는 남성은 담낭관이 넓어서 담석이 잘 이동하고, 담즙이 췌관으로 빈번하게 역류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23]. 한편, 타이완에서 급성 담석성 췌장염으로 입원한 13,110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남성은 여성보다 췌장염의 중증도가 높았고 예후가 불량하였다[24]. 남성은 병원 사망률(상대위험도 1.81, 95% CI: 1.15-2.86), 국소합병증(상대위험도 1.38, 95% CI: 1.05-1.82), 소화기 출혈(상대위험도 1.44, 95% CI: 1.18-1.76) 및 전비경구영양(상대위험도 1.24, 95% CI: 1.00-1.52)의 비율이 여성보다 높았다[24]. 또한, ERCP 연관 췌장염은 여성에서 발생률이 높았다(상대위험도 1.46, 95% CI: 1.30-1.64) [25].
7) 만성 췌장염
알코올에 의한 만성 췌장염의 비율이 여성은 29.5%로 남성의 75.7%에 비하여 현저히 낮았다[26]. 2017년도 우리나라 보건 통계에 의하면, 고위험음주율(1회 음주량이 남자 7잔[여자 5잔] 이상이며, 주 2회 이상 음주)이 여성은 5.1%로 남성의 20.5%에 비하여 현저히 낮았다[27]. 그러나 여성은 적은 양의 음주로도 심각한 질병을 일으킨다. 알코올성 만성 췌장염을 일으키는 평균 음주 기간은 여성은 23.0년으로 남성의 34.3년에 비하여 짧았고[28], 비결석성 췌장염을 일으키는 음주량이 여성은 하루 24 g 이상으로 남성의 하루 48 g 이상에 비하여 현저히 적었다[29]. 이것은 남성이 여성에 비하여 알코올 대사효소인 알코올 탈수소효소가 1.5배로 많고 근육성분이 많아서 해독작용이 우수하며 체수분량이 많은데 비하여, 여성은 에스트로겐이 알코올 분해를 방해하므로 음주 후 혈액내 알코올 농도가 높기 때문이다.
8) 췌담도계 수술 이환율 및 사망률
남녀 간의 차이는 수술을 한 후 회복력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여 간이나 췌장 질환으로 수술을 한 여성은 남성보다 수술 후 사망률이 낮았다[30]. 이것은 수술 등으로 외상성 출혈이 있을 때 여성 호르몬은 대식세포에서 프로- 및 항염-사이토카인 분비를 조절하는데 비하여, 남성 호르몬은 대식세포의 작용을 억제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31,32]. 그러나 담도계 수술 후의 예후는 남녀 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5]. 또한, 응급 복부 수술을 하였을 때 중증도가 중간 이상인 경우에는 남녀 간 예후는 차이가 없었으나, 중증도가 낮은 경우 여성의 사망률이 유의하게 낮았다(남성 25% 대 여성 10%) [33].
9) 담도암과 췌장암
우리나라의 암 통계에 의하면 2015년도 췌장암은 남성 3,359예, 여성 2,983예로 남성의 비율이 높았고 담낭 및 기타 담도암은 남성 3,220예, 여성 3,031예로 남녀 간 유사한 발생률을 보였다[34]. 암 발생률이 남녀 간 차이를 보이는 것은 성호르몬의 작용이 일부 관여할 것으로 추측된다. 정상 췌장에는 발현되지 않는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태아 및 췌장암의 세포질과 핵에서 발현되며[35], 실험실 연구에서에스트로겐은 췌장암을 억제하는 효과가 입증되었다[36,37]. 또한, 고지방식 후 췌장에서 발생하는 산화스트레스의 양은 암컷 쥐에서 수컷 쥐에 비하여 적었다[38]. 이러한 연구 결과를 근거로 에스트로겐이 췌장암을 억제하는 기전으로 여성에서 췌장암의 발생률이 낮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에스트로겐 이외에도 남성에서 높은 췌장암의 다른 위험인자들이 함께 작용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을 요약하여 췌장 및 담도 질환 분야에서 성차의학을 Table 1에 정리하였다.
2. 성차의학 연구 동향
성차의학은 1991년에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이 Women's Health Initiative를 설립하였고, 1995년에 미국 식품의약국(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이 Office on Women's Health (OWH)를 설립하면서 기초를 마련하였다[39]. 이후 성차의학은 유럽과 아시아로 전파되면서 2006년에 International Society of Gender Medicine이 설립되어 성차의학에 대한 연구 및 학술대회를 하고 있다[40].
한편, NIH는 2014년에 척추동물과 인간에 대한 연구를 할 때 실험동물이나 세포를 사용하는 전임상 연구부터 남녀를 모두 연구계획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원칙을 발표하였다[41]. 이에 따라 2016년부터 미국 NIH에 제출하는 척추동물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계획서에는 성별을 생물학적 주요 변수로 고려하여 암수를 모두 포함시키거나 그럴 필요성이 없는 경우에는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41]. 유럽은 Horizon2020 사업에서 젠더 연구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연구비 심사의 필수항목으로 채택하는 등 젠더 연구는 국제적으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제3차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지원 기본계획(2014-2018)에서 연구를 기획하는데 젠더분석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제시하였으나 아직까지 정책으로 확립되지 않았다[42]. 향후 정부 지원을 받는 과학기술 분야 연구는 젠더분석을 연구 계획, 실행 및 분석의 전 과정에 포함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성차의학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Table 2).
1) International Society of Gender Medicine (http://www.isogem.eu/)
성차의학을 연구, 교육 및 환자 진료 분야에서 적용시켜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과학자와 임상의사들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2) GenderMed Database and the Pilot Project Gender in Medicine (http://gendermeddb.charite.de/)
성차의학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모듈을 제공하고 성차와 연관된 혁신적인 연구를 지원하며 참여자들끼리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3) 젠더혁신 프로젝트(영문: http://genderedinnovations.stanford.edu, 한글: http://genderedinnovations.gister.re.kr)
성과 젠더분석을 통한 편향성이 없는 연구를 과학 기술 연구와 제품 개발에 활용하여 생활의 질과 편의성을 높이자는 젠더혁신의 개념, 연구 방법 및 사례 연구 등을 소개한다.
결 론
지금까지 이루어진 연구성과를 토대로 하여 췌장·담도 질환에서 남녀 간의 차이를 보이는 질환들의 특성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성 호르몬의 차이, 효소의 양, 체성분 및 음주나 흡연 등의 사회문화적 차이 등이 관여하여 성차를 나타낸다. 그러나 실험실 연구나 소규모의 후향적 연구들이 대부분이어서 성차가 임상 결과나 예후에 미치는 효과를 충분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향후 전향적인 연구를 토대로 임상에서 환자들을 진단하거나 치료할 때 남녀 간의 차이를 고려한 성차의학에 대한 의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세계 각국에서 연구의 설계, 실행 및 분석에 이르는 과정에서 성과 젠더의 분석을 필수항목으로 규정하고 있다. 향후 연구, 진료 및 의학교육 분야에서 성과 젠더의 차이를 고려한 성차의학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